박남수, '아침 이미지' 본문 분석
이 작품에서 연의 구분은 없다.
여기에서 단락을 나눈 것은 설명의 편의를 위한 것임을 밝혀 둔다.
어둠은 새를 낳고, 돌을
낳고, 꽃을 낳는다.
시간적으로 어둠이 이제 막 가시기 시작하는 시간이다.
뒤에서 더 분명해지겠지만, 이 작품의 시상 전개는 시간의 축에 따라 이루어지고 있다.
'어둠'은 활유적으로 제시되어 있다.
어둠이 가심에 따라 형상들이 나타나는 모습을 '낳고', 즉 모태적으로 제시하고 있다.
여기에서 '새', '돌', '꽃'은 개별적 대상이지만, 문맥적으로는 뒤에서 제시될 '온갖 물상', 즉 온갖 대상들을 대유적으로 드러내고 있다.
다른 말로 바꾸어 말하자면 ‘새', '돌', '꽃’은 '온갖 물상들을 대표하여, 그 '물상'들을 표현하고 있다.
흔히 '어둠'과 밝음을 대립적으로 보지만, 여기에서는 대립적이지 않다.
또 '어둠'을 부정적으로도 보지만, 그것도 물론 아니다.
‘어둠’은 밤 동안 만물을 잉태하여 아침이면 그 생명을 태어나게 한다. 즉, ‘어둠’은 생명의 모태로서의 긍정적인 의미를 지니게 된다.
'낳고', '낳고', '낳는다'는 반복적이다. 동일한 시어의 반복이라고 할 수 있다.
1행의 마지막 '돌을'과 '2행의 낳고'는 일상적인 어법이라면 같은 행이었어야 했다. 결국 의도적인 행갈음이 이루어진 것이다.
이러한 의도적인 행갈음은 독자의 호흡에 변화를 주어 긴장감을 느끼게 하여 시적 의미를 강조한다.
이렇게 행갈음을 함으로써 '낳고'가 2행의 맨 앞에 위치됨으로써 강조의 효과를 주고 있다고 할 수 있다.
'낳는다'는 현재 시제이다. 이와 같은 현재 시제의 표현은 작품 전체에 일관되어 있다.
생생한 느낌을 주는 효과가 있다.
아침이면,
어둠은 온갖 물상(物象)을 돌려주지만
스스로는 땅 위에 굴복한다.
앞 단락이 어둠이 가시기 시작하는 시간이라면 이 단락의 시간은 밝음이 완전히 깃든 시간이다.
물론 시상의 전개가 시간의 축에 따라 이루어지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여기에서 '아침'은 자신은 '굴복'하며, '온갖 물상'을 돌려주는 희생적인 대상으로 제시되어 있다.
무거운 어깨를 털고
물상들은 몸을 움직이어
노동의 시간을 즐기고 있다.
밝음이 깃든 뒤에 모든 것들이 생명의 작용을 하고 있는 모습을 이미지로 표현하고 있다.
'무거운 어깨'는 이제는 털어버린 어둠의 중량감을 드러낸 표현이다.
'노동의 시간'에서 '노동'은 일상적인 의미에서의 '노동'이 아니라, 생명의 작용이다.
'노동'이라고 표현한 것을 원시적인 건강성을 드러내기 위한 의도로 풀이하는 입장도 있으나, 무시해도 좋은 해석이다.
여기에서 '물상'들은 의인화되어 있다.
즐거운 지상의 잔치에
금(金)으로 타는 태양의 즐거운 울림.
'즐거운 지상의 잔치'는 '온갖 물상들'의 활기와 희열로 가득한 모습을 드러내고 있다.
'즐거운'은 '즐거운' 울림에서도 반복적으로 제시되어 활기와 희열을 강조하고 있다.
생동감 넘치는 아침이 절정에 이른 모습을 나타낸다.
'금(金)으로 타는 ~ 울림'은 공감각적 이미지이다.
'울림'은 청각적이되, '금으로' 타고 있다고 함으로써 시각적 이미지로 전이시켜 표현하고 있다. 이것은 감각의 전이라고 하고, 그 이미지를 공감각적 이미지라고 한다.
작품 전체에서 이 부분만 명사형으로 종결되어 있다.
명사형 종결은 압축과 생략을 통해 여운을 주기 위한 것이다.
아침이면,
세상은 개벽을 한다.
'개벽'은 세상이 처음으로 열린다는 의미이다.
아침의 모습을 '개벽'이라고 표현하고 것에는 시적 화자의 경외감이 함축되어 있다.
감각적 · 회화적 · 묘사적 제시
이 작품은 주로 시각적 이미지를 중심으로 제시되어 있다.
이미지를 중심으로 하고 있다는 점에서, '감각적'이라고 한다.
그리고 주로 '시각적'이라는 점에서 '회화적', 혹은 '묘사적'이라고 한다.
감정의 절제 · 주지적
이 작품에서 시적 화자의 존재는 드러나 있지 않다.
시적 화자의 정서는 전혀 표출되어 있지 않다.
대상의 제시는 주관적이지만, 그렇다고 감정이 이입되어 있지는 않다.
감정 이입은 시적 화자의 정서가 대상이 이입되어 그 대상의 정서로 표현되어 있어야 하나 그런 표현은 없다.
이와 같은 정서 제시의 특징을 '정서가 절제되어 있다', 혹은 '주지적이다'라고 한다.
기승전결의 구조
흔히 이 작품을 기-승-전-결의 구조라고 한다.
기'에서 시작, '승'에서 전개, '전'에서 전환, '결'에서 매듭이다.
그러나 이 작품에서 전환을 찾기는 어렵다.
흔히 '무거운 어깨를 털고 / 물상들은 몸을 움직이어 /노동의 시간을 즐기고 있다.'를 전환으로 보기도 하나, 실상 전환으로 보기는 어렵다.
결국 기승전결의 구조라고 하기에는 무리가 있다.
감정 이입
이 작품에 감정 이입이 이루어진 부분은 없다.
감정 이입은 다음 두 가지 경우에만 인정된다.
① 시적 화자의 정서가 투영된 대상이 제시되어 있어야 한다. ② 의인화된 그 대상의 정서가 시적 화자의 정서와 같아야 한다.
다음과 같은 것이 대표적인 감정 이입이다.
산산이 부서진 이름이여!
허공중에 헤어진 이름이여!
불러도 주인 없는 이름이여!
부르다가 내가 죽을 이름이여!
심중(心中)에 남아 있는 말 한 마디는
끝끝내 마저 하지 못하였구나.
사랑하던 그 사람이여!
사랑하던 그 사람이여!
붉은 해는 서산마루에 걸리었다.
사슴의 무리도 슬피 운다.
떨어져 나가 앉은 산 위에서
나는 그대의 이름을 부르노라.
김소월의 '초혼'이다.
사랑하는 임과의 사별을 슬퍼하는 매우 격정적인 정서를 담고 있다.
'사슴의 무리도 슬피 운다'에서 '사슴'은 의인화되어 있고, '슬피' 울고 있다는 데에서 시적 화자의 정서와 동질적이다.
이런 것이 감정 이입이나, '아침 이미지'에 이와 같은 감정 이입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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